[PORTRAIT]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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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오늘은 잘 부탁드립니다.>
아키오미
잘 부탁드립니다.
후후. 인터뷰는 오랜만이라서 살짝 긴장되네요. 혀가 꼬이거나 뚝딱이더라도 부디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굉장히 당당해 보이시는 걸요.>
아키오미
감사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유메노사키 학원이라는 고등학교의 교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니까요.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과의 면담에는 익숙하죠.
오히려 아이돌이나 모델로서 보다는 교사의 입장에서 답변드리진 않을까 걱정이네요...... 지금의 저는 명실공히 거의 일반인이라서요.
<겸손하시네요. 쿠누기 선생님은ㅡ>
아키오미
'쿠누기 씨'라고 불러주세요. '선생님'이라고 부르시면 그야말로 본격적인 진로 상담이나 삼자대면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것 같네요.
<명심할게요. 하지만 쿠누기 씨는 『Ba-barrier』 명의로 아이들과 함께 무대에 서기도 하시는 점에선 여전히 현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오히려 아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어른스러운 캐릭터나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으로서의 모습이 팬들을 더욱 매료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아키오미
그런가요? 그렇다면 '선생님 캐릭터'로 행동하는 편이 이 경우에는 더 좋은가요?
<편하신 대로 부탁드려요. ......이제 입은 조금 풀리신 것 같네요.>
<그럼 우선 쿠누기 씨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프로필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키오미
네. 필요하겠네요. 저는 현역 때에도 그렇게 확 눈에 띄는 건 아니었어서 오히려 '잘 모르시는 분'들이 대다수일 테니까요.
거꾸로 왜 이제 와서 저 같은 사람에게 인터뷰 의뢰가 왔는지도 신기하게 생각할 정도입니다.
<정말 겸손하시네요. 적어도 그라비아 모델을 전임하셨을 때는 '모델은 쿠누기 아키오미'라고 칭송받았을 정도로 유명 인사에 인기 스타였다고 기억하고 있는데요?>
아키오미
네. 그건 그렇죠.
모델 때는 세상을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날개라도 돋친 것처럼 "나는 뭐든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순풍만범이었죠.
<쿠누기 씨는 『모델 업계의 반짝반짝 왕자님』이라고 불리며 대활약하신 뒤, 유메노사키 학원에 입학해 아이돌이 되신 거죠?>
아키오미
네. 역시 잘 알고 계시네요.
<인터뷰 상대에 대해 조사하는 건 당연한 일인걸요.>
아키오미
후후. 모델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돌 때의 저에 대해 조사하셨을 땐 고생 좀 하셨겠네요.
이건 비하도 그 외 다른 것도 아니지만, 그 시절의 저는 여러 가지 의미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으니까요.
<이번에 여쭤보고 싶었던 건 모델 때의 일이라......>
아키오미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 뒤로 10년 이상이 지나고, 여전히 현역으로 모델 일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아이돌도 그렇습니다만, 오랫동안 지속하기에는 힘든 일이죠.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에선 젊음이 칭송받는 경향이 있고,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 용모 같은 건 변하게 되니까요.
아이돌이나 배우 같은 세컨드 커리어를 찾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천운을 맛볼 수 있는 자는 아주 극소수예요.
<맞아요. 재능 있는 아주 소수의 천재가 평생 현역에서 빛나고 있기 때문에, 쓰러져 간 무수히 많은 패배자들은 아무도 보지 못하죠.>
<이 세상의 금방 질리고 금방 관심사를 옮기는 돼지들은 먹고 남은 잔반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아요. 금세 또 잊어버리고 없던 일이 되죠.>
아키오미
............
<아, 죄송합니다.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였죠.>
아키오미
아뇨 아뇨. 저는 재미없는 사람이라, 수업 같은 때에도 학생들이 곧잘 숙면을 취하곤 하는데......
당신께서 얘기를 이어 주시고 여유를 만들어주시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아뇨, 실례했습니다. 주제로 돌아가죠.>
아키오미
네. ......제가 모델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고 하셨는데
계속해서 제 자랑만 늘어놓는... 그런 분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계속 듣고 있기 불편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럼요. 더 많이 자랑해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런 취지의 인터뷰니까요.>
아키오미
이런 걸 공개하면 반감만 더 살 것 같은데요. 뭐, 이제 와서 '쿠누기 아키오미'라는 이름이 더럽혀진들 상처 입은들 그렇게 곤란하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평소엔 학생들 앞에서는 잘난 체하는 주제에 안 좋은 여론이 만들어지는 것도 피하고 싶군요ㅡ
그러니 실패담을 중심으로 말씀드리도록 하죠.
젊은이들은 아저씨의 과거 영웅담 같은 건 들어도 불쾌해하기만 하죠. 하지만 어리석은 실패담이라면 흥미로워해 줄지도 모르겠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키오미
네. 다행히 당신의 취향도 '그쪽'인 것 같네요.
그럼 뭐부터 말씀드릴까요.
<쿠누기 씨의 모델 때의 실패담이라고 하면, 역시 그게 연상될 수밖에 없죠. 그 불길했던 백화점의ㅡ>
아키오미
아...... 제가 모델 활동을 일시적으로 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된 그 사건 말이군요.
이제 시효도 없을 테니 이제 와서긴 합니다만, 그 사건의 진상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죠.
프라이버시 보호 관점에서 구체적인 인물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요.
등장인물은 알기 쉽게 A군, B군, C군 이라고 합시다.
이건 제가 굉장히 아름답고 귀여운 세 명의 키즈 모델들과 실제로 겪은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