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분 후>

 

아키오미

(대체 뭐였을까요?)

(저 두 사람ㅡ 세나 군과 유우키 군...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는데.)

(『말 안 들어주면 너한테 이상한 짓 당했다고 울부짖을 거야』,라고 세나 군한테 협박까지 당한 탓에ㅡ)

(그 아이들에게 언제나 몰래 쉬던 제 비밀 장소를 안내해줄 수밖에 없었어요. 협박에 굴한 거죠. 전 정말 약한 사람이에요.)

(자판기와 소파 같은 게 놓여 있는 장소긴 해도)

(근처에 있던 흡연 장소도 철거된 모양이라 지금은 그 근처에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죠.)

(그래서 저도 억지로 웃는 데 지칠 때, 거기서 쉬곤 했어요.)

(그보다 그 아이들이 걱정이네요. 왠지 유우키 군이 컨디션 불량으로 축 늘어져 있던 것 같은데...)

(당연히 같이 와있을 터인 부모님을 부를까, 하고 물었더니 엄청나게 거부했었죠.)

(부모님께 말하면 죽인다... 라니.)

(무서워...... 요즘 애들은 이렇게 금방 '죽인다'라는 말을 한다니까요......)

(......좀 마음에 걸리는 태도긴 해요. 저 정도 나잇대엔 부모님이란 존재가 가장 든든한 내 편이라고나 할까, 말 그대로 보호자일 텐데...)

(아, 아동 학대라도 당하고 있는 건...... 아니, 그래도 눈에 띄는 곳에 그런 흔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흔적이 있었으면 모델 일 같은 건 못할 테니까요.)

......혹시 뭐라도 아는 게 있나요, 나루카미 군?

 

아라시

............!

......아? 네? 죄송해요, 엄마, 아빠가 모르는 사람하고는 얘기하지 말라고 해서요!

 

아키오미

『모르는 사람』이라뇨. 이제까지 같은 촬영장에서 몇 번이고 만난 적이 있는데ㅡ 당신, 빈번히 절 미행하시죠?

오늘도 아침부터 계속 제 뒤를 쫓아왔고요?

 

아라시

............?

 

아키오미

응? 어라? 쫓아오셨, 었죠? 제 착각인가요?

 

아라시

그야ㅡ

아키오미는... 내 적이니까.

 

아키오미

적.

 

아라시

아키오미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아키오미가 갖고 있는 걸 전부 다 뺏어야만 해요.

 

아키오미

예...

 

아라시

그러니까 전 당신을 관찰하고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아키오미

무슨 말인지는 대충 알겠는데요.

 

아라시

알겠어요? 역시 아키오미예요.

 

아키오미

요약하자면, 지금 모델 계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젊은 모델인 저 『반짝반짝 왕자님』, 즉 쿠누기 아키오미를 동경한다는 거죠?

 

아라시

동경......?

 

아키오미

저처럼 되고 싶은 거라면 그렇게 말하면 될 텐데. 귀여운 후배를 위해 모르는 게 있다면 뭐든지 알려줄게요.

 

아라시

귀여워......?

 

아키오미

네. 아까 만났던 세나 군과 유우키 군도 그래요. 소속사는 다르더라도 다 같은 모델이에요ㅡ

제겐 선배로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지도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아라시

세나는 모르는데 유우키는 알아요.

지금 제일 센 키즈 모델. 아키오미를 물리친 다음에 걔도 물리칠 거예요.

 

아키오미

왜 그렇게 호전적인 건가요...

(아니지. 이 아이는 아마 어휘가 부족한 것 같네요. 문장도 어딘가 조금 부자연스럽고요.)

(아무래도 부모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한 탓에 일상 회화에서 사용할 수 있는 어휘량이 부족했고ㅡ)

(그래서 TV나 만화에서 들은 말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 말하고 있는 거겠죠. 그러니 어딘가 엉뚱한 말을 하는 것처럼도 들리는 거고요.)

(이 아이는 아마... 본인 안에 있는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세나 군이나 유우키 군도 그런 거겠죠. 아직 어린 남자애들이고. 저도 분명 이 아이들과 비슷한 나잇대 때는ㅡ)

 

아라시

아키오미.

 

아키오미

앗, 네. 뭐죠? 미안해요. 조금 생각에 빠져 있었네요.

그보다도, 당신 말이죠. 윗사람... 나이가 더 많은 형을 이름으로 막 부르다니ㅡ

 

아라시

ㅡ걔네한테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아요.

 

아키오미

? 걔네라면... 세나 군과 유우키 군 말인가요?

뭐라도 그 아이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나요, 나루카미 군?

 

아라시

전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엄마랑 사람들이 그랬어요. 걔네들 부모는 위험하다고요.

 

*

 

 

<ES 설립 초년도부터 거슬러올라가 14년 전. 도내 모처의 촬영 스튜디오>

 

아키오미

ㅡ모델 계의 반짝반짝 왕자님, 촬영장 들어갑니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앗 이런, 촬영 중이었군요! 시끄러우셨죠! 조용히 할게요!

아, 젊은이는 기운이 넘쳐야 한다고요? 맞아요! 저도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흠흠, 요즘 애들은 기운이 없어서 저처럼 반짝이는 느낌은 드물다고요?

하하, 반짝반짝 왕자님이니까요! 반짝이는 게 당연하죠!

 

이즈미

......반짝반짝 왕자님?

 

아키오미

응? 당신은 누구시죠? 제 팬인가요? 후후훗, 이렇게 작은 어린이에게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군요!

 

이즈미

짜증 나. 촌스러워. 최악이야.

 

아키오미

.........!?

아니, 저! 시시시실례군요! 저도 필사적으로 부끄러움을 참아가면서 반짝반짝 왕자님을 하고 있는 건데!

 

이즈미

............

 

아키오미

(ㅡ무시!? 대체 이 시건방진 어린이는 뭐죠! 가정교육이 어떻게 되어 있는 건지!)

(우리 소속사의 나루카미 군도 비슷하긴 한데, 이래서 어른들한테 『요즘 애들은』 같은 소리를 듣는 거라고요......!)

(여기서는! 조금 더 나이가 많은 형으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이 아이에게 설교를 해줘야겠어요!)

(윗사람께 말하는 법도 몰라서는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기 어려울 테니까요!)

흠! 당신, 거기 당신!

 

이즈미

......내 이름 『당신』 아닌데.

 

아키오미

크윽!? 저기 저, 그러고 보니 최근에 잡지에서 당신을 자주 봤던 기억이 나요ㅡ 다른 소속사 친구였는데, 이름이 아마 이즈미 군?

 

이즈미

............

 

아키오미

이즈미 세나 군 맞나요? 살짝 이국적인 느낌이 나네요, 그러고 보니 외모도 왠지 모르게ㅡ

 

이즈미

세나 이즈미인데.

 

아키오미

네?

 

이즈미

그러니까 내 이름, 이즈미 세나가 아니라 세나 이즈미라고.

세나가 성이고 이즈미가 이름. 다른 사람 이름 틀리는 거, 엄청 실례거든.

그렇게 예의를 모르니까 아저씨들한테 『요즘 애들은』 같은 소리를 듣는 거잖아.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반짝반짝 아저씨.

 

아키오미

반짝반짝 왕자님입니다!

 

이즈미

......시끄러워. 목소리 너무 커. 열받아.

 

아키오미

열이 받는 건 저거든요!?

 

이즈미

입 다물어. 조용히 해. 집중이 안 돼.

간만에 유우 군 본 건데.

 

아키오미

유우 군......?

 

마코토

☆☆☆☆☆

 

아키오미

(앗...... 지금 촬영 중인 저 아이, 이름이 아마 유우키 마코토 군이었던 거 같은데. 이즈미 세나ㅡ 가 아니라 세나 이즈미 군이 보고 있는 건 저 친구군요.)

(저 아이에 대해서도 알고 있죠. 키즈 모델 업계에선 지금 제일 잘 나가는... 『신동』이라고 불리는 아이.)

(뭐, 저도 어렸을 땐 『신동』이나 『천재』로 불렸긴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딱히 제가 진 것도 아니죠?)

(여하튼 그런 칭찬이 잘 어울릴 만큼... 예쁜 아이네요.)

 

마코토

☆☆☆☆☆

 

이즈미

앗, 위험하다.

 

아키오미

......? 뭐가요?

 

이즈미

너한테 한 말 아냐. 근데 너... 뭐더라ㅡ 반짝반짝 아저씨.

 

아키오미

반짝반짝 왕자님, 쿠누기 아키오미입니다. 당신의 선배고 모델을 하고 있죠.

잘 부탁해요. 여기, 명찰이에요.

 

이즈미

줘봤자 한자 어려워서 못 읽거든.

 

아키오미

아, 당신 아직 5살인가 6살밖에 안됐었죠? 초등학교 저학년이라ㅡ

 

이즈미

그래서 뭐. 그나저나 유우 군, 더 이상은 안돼.

수건이랑 물 준비해.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쉴 수 있는 데 알려줘.

그 정도는 알 거 아냐, 선배님?

 

아키오미

(저, 정말 이 이상은 없을 정도로 건방진 아이로군요......! 같은 모델이니까 친하게 지내주려고 했는데, 제 마음이 바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친구... 어딘가 모르게 진지하네요...... 무서울 정도로.)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여기선 제가 어른 역이 되어서 요구하는 걸 들어주도록 하죠.)

(이 친구는 건방지기도 하고,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어른을 의지할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지금은 마치 자신이 우위인 것처럼 명령 어조로 말하긴 하지만, 처음 만난 저한테 의지하고 있는 걸 보면)

(그만큼의 비상사태라는 거겠죠...... 그런 이 아이의 부탁을 거절하는 건, 어쩐지 굉장히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지네요.)

 

이즈미

빨리.

 

아키오미

아야야야야!? 허벅지 꼬집지 마세요! 흉터가 생기면 수영복 촬영 때 곤란하단 말이에요!

 

마코토

☆☆☆☆☆

(ㅡ아, 형아다)

(형아 오늘 조금 신났나? 후후후~♪)

 

*

 

 

<ㅡ오늘은 잘 부탁드립니다.>

 

아키오미

잘 부탁드립니다.

후후. 인터뷰는 오랜만이라서 살짝 긴장되네요. 혀가 꼬이거나 뚝딱이더라도 부디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굉장히 당당해 보이시는 걸요.>

 

아키오미

감사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유메노사키 학원이라는 고등학교의 교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니까요.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과의 면담에는 익숙하죠.

오히려 아이돌이나 모델로서 보다는 교사의 입장에서 답변드리진 않을까 걱정이네요...... 지금의 저는 명실공히 거의 일반인이라서요.

 

<겸손하시네요. 쿠누기 선생님은ㅡ>

 

아키오미

'쿠누기 씨'라고 불러주세요. '선생님'이라고 부르시면 그야말로 본격적인 진로 상담이나 삼자대면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것 같네요.

 

<명심할게요. 하지만 쿠누기 씨는 『Ba-barrier』 명의로 아이들과 함께 무대에 서기도 하시는 점에선 여전히 현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오히려 아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어른스러운 캐릭터나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으로서의 모습이 팬들을 더욱 매료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아키오미

그런가요? 그렇다면 '선생님 캐릭터'로 행동하는 편이 이 경우에는 더 좋은가요?

 

<편하신 대로 부탁드려요. ......이제 입은 조금 풀리신 것 같네요.>

<그럼 우선 쿠누기 씨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프로필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키오미

네. 필요하겠네요. 저는 현역 때에도 그렇게 확 눈에 띄는 건 아니었어서 오히려 '잘 모르시는 분'들이 대다수일 테니까요.

거꾸로 왜 이제 와서 저 같은 사람에게 인터뷰 의뢰가 왔는지도 신기하게 생각할 정도입니다.

 

<정말 겸손하시네요. 적어도 그라비아 모델을 전임하셨을 때는 '모델은 쿠누기 아키오미'라고 칭송받았을 정도로 유명 인사에 인기 스타였다고 기억하고 있는데요?>

 

아키오미

네. 그건 그렇죠.

모델 때는 세상을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날개라도 돋친 것처럼 "나는 뭐든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순풍만범이었죠.

 

<쿠누기 씨는 『모델 업계의 반짝반짝 왕자님』이라고 불리며 대활약하신 뒤, 유메노사키 학원에 입학해 아이돌이 되신 거죠?>

 

아키오미

네. 역시 잘 알고 계시네요.

 

<인터뷰 상대에 대해 조사하는 건 당연한 일인걸요.>

 

아키오미

후후. 모델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돌 때의 저에 대해 조사하셨을 땐 고생 좀 하셨겠네요.

이건 비하도 그 외 다른 것도 아니지만, 그 시절의 저는 여러 가지 의미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으니까요.

 

<이번에 여쭤보고 싶었던 건 모델 때의 일이라......>

 

아키오미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 뒤로 10년 이상이 지나고, 여전히 현역으로 모델 일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아이돌도 그렇습니다만, 오랫동안 지속하기에는 힘든 일이죠.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에선 젊음이 칭송받는 경향이 있고,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 용모 같은 건 변하게 되니까요.

아이돌이나 배우 같은 세컨드 커리어를 찾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천운을 맛볼 수 있는 자는 아주 극소수예요.

 

<맞아요. 재능 있는 아주 소수의 천재가 평생 현역에서 빛나고 있기 때문에, 쓰러져 간 무수히 많은 패배자들은 아무도 보지 못하죠.>

<이 세상의 금방 질리고 금방 관심사를 옮기는 돼지들은 먹고 남은 잔반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아요. 금세 또 잊어버리고 없던 일이 되죠.>

 

아키오미

............

 

<아, 죄송합니다.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였죠.>

 

아키오미

아뇨 아뇨. 저는 재미없는 사람이라, 수업 같은 때에도 학생들이 곧잘 숙면을 취하곤 하는데......

당신께서 얘기를 이어 주시고 여유를 만들어주시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아뇨, 실례했습니다. 주제로 돌아가죠.>

 

아키오미

네. ......제가 모델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고 하셨는데

계속해서 제 자랑만 늘어놓는... 그런 분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계속 듣고 있기 불편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럼요. 더 많이 자랑해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런 취지의 인터뷰니까요.>

 

아키오미

이런 걸 공개하면 반감만 더 살 것 같은데요. 뭐, 이제 와서 '쿠누기 아키오미'라는 이름이 더럽혀진들 상처 입은들 그렇게 곤란하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평소엔 학생들 앞에서는 잘난 체하는 주제에 안 좋은 여론이 만들어지는 것도 피하고 싶군요ㅡ

그러니 실패담을 중심으로 말씀드리도록 하죠.

젊은이들은 아저씨의 과거 영웅담 같은 건 들어도 불쾌해하기만 하죠. 하지만 어리석은 실패담이라면 흥미로워해 줄지도 모르겠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키오미

네. 다행히 당신의 취향도 '그쪽'인 것 같네요.

그럼 뭐부터 말씀드릴까요.

 

<쿠누기 씨의 모델 때의 실패담이라고 하면, 역시 그게 연상될 수밖에 없죠. 그 불길했던 백화점의ㅡ>

 

아키오미

아...... 제가 모델 활동을 일시적으로 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된 그 사건 말이군요.

이제 시효도 없을 테니 이제 와서긴 합니다만, 그 사건의 진상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죠.

프라이버시 보호 관점에서 구체적인 인물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요.

등장인물은 알기 쉽게 A군, B군, C군 이라고 합시다.

이건 제가 굉장히 아름답고 귀여운 세 명의 키즈 모델들과 실제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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